(영상이 짧습니다) 애인에게 시간표를 받았다. 생전 처음 받아본 것이라 입꼬리가 절로 씰룩거렸다. 사진도 하나 찍어놓고, 일부러 뽑아 냉장고에도 붙여두었다.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뭐냐며 약간 놀리는 듯 웃던 하나 씨가 굳이 떼어내지 않는 것도 좋았다. 색색깔의 시간표는 내가 보기에도 썩 괜찮았는데, 하나 씨 말로는 월요 공강...
하나 씨에 대해 알게 된 것. 말을 참 재미있게 한다. 스스로가 듣는 사람의 입장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굳이 먼저 말하는 타입이 아닐 뿐이라고 여겼는데, 그와의 대화는 듣기만 해도 즐거워서 청자를 자청하게 된다. 그래서요? 재밌었어요? 왜요? 어떻게? 어쩌다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스킬 따위를 사실 잘 쓰는 편이 아닌데도 계속해서 묻게 된다. 더 ...
호천비가虎天飛歌 : 하늘을 가르고 날으신 호랑이를 노래하다 대신 중 여인의 머릿수가 반이 넘었다. 남신男臣들은 편전에서 대면한 이가 또렷하고 분명한 말씨로 그건 아니 될 말씀이라며 일언반구에 자를 때마다 얼굴을 붉혔다. 정책을 논의하면서도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가 하면, 심신이 미령하거나 연로한 자는 자주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그리 몸이 약해서야 쓰겠는가...
999 팔로워 이벤트 & 할로윈 기념 연성 하여간 이맘때만 되면 인간이고 뭐고 다들 신나서 사족을 못 쓰는 꼬락서니가 우습다. 방금까지도 마늘이며 생강 팍팍 들어간 김치 찢어다 고기 구워 먹은 주제에. 그러면서 김치찌개 들이키고 김치 추가 시킨 주제에, 무슨 할로윈이고 나발인지. 웃기지도 않는다. 옆집 늑대인간도, 뒷집 뱀파이어도 신이 나선 자기들 ...
구정물과 쓰레기로 가득 찬 거리를 빠르게 내달리는 지프차는 앞이 보이는 게 신기할 만큼 지저분했다. 진흙 덩어리가 말랐다가 떨어지길 반복한 자국 위로 자갈이며 날짐승의 것으로 보이는 털 따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시간이 있다면 어떻게든 녹이고 씻어버렸겠지만 그런 여유는 3년째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차의 비위생적인 상태는 천일이 넘도록 더럽게 지속되...
호천비가虎天飛歌 : 하늘을 가르고 날으신 호랑이를 노래하다 백성 모두가 성군聖君이라 칭하는 것에 거리낌 없는 왕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우짖지 아니하고 총명함으로 반짝이는 눈을 접어가며 방긋 웃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온화한 미소와 굳건한 모습만을 보여 온 왕이었다. 모든 것이 그의 덕이라며 칭송받았다. 비님이 오시는 것도, 해님이 오래 계시는 것도. 어...
스탠드 조명만이 실내를 밝히는 새벽. 목소리가 잔잔하게 흐른다. 하나 씨의 질문과 마음을 하나씩 주워 담으며 대답하고 끄덕이고 함께 웃었다. “사진 찍는 게 취미예요?” “그런 거 같아요. 꽤 좋아하거든요.” “카메라 들고 다니는 거 못 봤는데.” “전화기로 찍어요. 카메라 들고 다니긴 번거로워서.” “당연히 디카로 찍었을 줄 알았는데!” “칭찬이에요?” ...
출근 전 물건을 받아 오느라 가져온 차 시트가 차갑다. 내내 세워져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이럴 땐 정말 싫다. 히터를 서둘러 높이는 동안에도 아래턱이 떨렸다. 조금만 참자. 조금만. 왜 이렇게 추위에 약할까. 가을 태생이면 추위에 면역성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게 다 어릴 때 아무도 안아주지 않은 탓이다. 얼토당토않은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추...
단지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나오는 오르막길은 동네 산으로 향하는 큰 길이다. 드라이브하기도 좋고 별 구경하기도 좋아서 가끔 찾는 곳인데 이런 식으로 올 줄은 몰랐다. 항상 있는 커피 트럭 뒤에 멈추자 하나 씨가 먼저 내렸다. “추워요. 옷 입어요.” 서둘러 따라 내리며 겉옷을 건네니 대충 껴입고는 깊이 공기를 들이마신다. 많이 답답했나. “히터가 너무 셌어요...
새벽의 한복판에서 설명을 늘어놓기엔 시간도 늦었고 공기가 찼다. 하나 씨는 이미 많이 울었고, 이러다 탈수라도 오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부엌의 작은 등 아래. 마주 앉아 따듯한 차를 마신다. 청소엔 꼼꼼한 편이라 보이면 안 될 것들이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민망했다. 마찬가지였는지 갈증이라도 해결하자며 설득해 겨우 들어선 이후로 ...
한 주가 지루하고 빠르게 지나간다. 신년 대비 시그니처 메뉴에 힘을 싣느라 머리만 핑핑 돌아가던 날들이었다. 회식이랍시고 모여 술이나 퍼마시면 더 피곤할 뿐이니 알바생들에게 식사권을 하나씩 챙겨주었다. 회사에서 보너스를 주듯 월급을 더 챙겨주는 게 좋겠지만 사장이 아니니. -식사권 결제는 사장이 했다- 그걸 제외하곤 조용하게 지나 보냈다. 금요일인 어제도 ...
얼음이 가득 담긴 잔에 에스프레소 샷과 우유를 붓는다. 코스터와 냅킨을 미리 올려둔 트레이에 물기가 묻지 않도록 놓고 진동벨을 누른다. 조급하지 않게 주변 정리를 하는 동안, 고객이 오지 않는다면 메뉴를 크게 말해 찾아가도록 한다. 아이스 라떼 한 잔 나왔습니다. 안 오면 더 크게. 그리 크지 않은 곳이라 목이 쉬도록 몇 번씩 부를 필요까진 없다. “감사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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